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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과 관계된 지나온 작은역사를 살펴봅니다.
또한 역사 속의 오늘 어떤 사건 사고들이 있었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04월 01일의 발자취 어제의발자취 | 오늘 | 내일의발자취
히틀러와 만우절 (1924)
오늘은 만우절이자 히틀러가 Landsberg 감옥으로 보내진 날이다.

왜 하필이면 만우절과 히틀러과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되는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1924년 독일에서 히틀러는 바바리아주에서 있었던 Beer Hall 소요에 실패하면서 5년간 감옥행을 선고받았던 날이다.

1920년대 초반 독일인들은 독일민주정부와 사회주의자,그리고 유태인들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갖고 있었다.

1923년 11월 8일, 독일과 프랑스에게 배상금을 재지불한 후에 나찌는 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최초의 시도인 Beer Hall 폭동을 일으킨 것이다.

히틀러는 바바리아주에서의 민족주의자 극우혁명이 당시 불만이 가득한 독일 군부에게 확대되어 베를린의 정부가 전복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폭동은 신속하게 진압되었고 주모자인 히틀러는 체포되어 1924년 4월 1일, 렌즈버그 감옥으로 호송되었다.

그는 감옥에서 그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나의 투쟁(Mein Kampf)"을 집필하고 대중연설력을 길렀다.

감옥에서의 아홉달 후 히틀러는 그의 지지자들에 의한 정치적 압력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다.

몇년후 히틀러와 나찌지도자들은 독일 의회를 장악하기 위한 열광적인 대중 정당으로 1932년 법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같은 해 당시 대통령이었던 Paul von Hindenburg는 히틀러에 의해 대통령의 명령이 거부당하게 된다.

1933년 내각의 실질적인 지도자기 되기를 희망했던 히틀러는 결국 총리로 지명받게 된다.

힌덴부르그는 히틀러의 정치력을 과소평가했고 내각을 장악한 히틀러의 첫 지시는 Reichstag building를 불태우라는 것이었다.

곧 나찌는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 정책을 취하게 되었고 Hermann Goering을 선전상으로 임명하면서 나찌는 전면적인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1934년 힌덴부르그가 서거하자 나찌는 완전히 권력을 장악하고 비극적인 제 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서막을 열게 된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쓰여진 말'에 의한 것보다 '이야기된 말'에 의한 것이며, 이 세상의 위대한 운동은 위대한 문필가에게서가 아니라 위대한 연설가에게서 그 진전의 혜택을 입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라고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작은 거짓말 보다 큰 거짓말에 대중들은 더 잘 속는다는 것을 그는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이러한 철학은 자연히 괴링에게 이어져 대중을 선동하고 열광시키는 방법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혹시 우리는 이러한 큰 거짓말에 중독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1957년 4월 1일, 리처드 딤블리는 BBC방송에서 "이탈리아, 봄철의 스파게티 수확"이라는 뉴스를 내보냈던 것. 한 술 더 떠서 화면에는 스파게티를 나무에서 따내는 장면까지 보내서 장난을 쳤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이런 내용들이 많이 보도가 되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만우절은 기원이 분분하다. 구로마력이 신력으로 바뀌면서 사람들이 장난을 쳤다는 설도 있고(예전 로마에서는 오늘날 4월 1일을 1월 1일로 쳤다. 그러면서 역이 바뀌자 옛날의 향수를 느끼던 사람들이 장난을 쳤다는 설) 프랑스의 경우에도 비슷한 경우의 예가 있다.

어쨌든 만우절(April pools' day)은 나머지 364일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되는 귀한 날이라고 생각이 된다.
동아일보 창간 (1920)
‘동아일보’가 김성수 박영효 등 애국지사 77인의 발기로 창간되었다.
초대사장에는 박영효가 추대됐으며 설립자 김성수가 중심이 되어 1921년 9월 주식회사를 설립하였고 송진우 이승훈 백관수 등이 8·15광복 전까지 사장을 차례로 지냈다.

동아일보는 일제강점기에 네차례나 무기정간을 당하기도 했고 1920년 11월 중국 지린성 훈춘에서 발생한 일본군의 한국동포학살사건을 취재하러 갔던 장덕준이 일본군에 피살돼 한국 언론사상 최초의 순직자를 내기도 하였다.

1936년 8월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을 보도하면서 손 선수의 가슴에 그려진 일장기를 말소시킨 사진을 실었다가 정간당한 것도 유명한 사건이었다.

동아일보는 1993년 4월 1일부터 저녁에 발행했던 신문을 아침 발행인 조간으로 전환하였으며 동아마라톤대회,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 등의 문화사업도 펼치고 있다.

또 1965년 이날은 1964년 7월 15일 주간으로 창간한 자매지인 소년동아일보가 날마다 발행하는 일간으로 바뀐 날이기도 하다.